"충격적인 시청각적 자극으로 똘똘 뭉친 시대극"
나에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브리저튼>을 한 마디로 평가하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 '충격'이라는 의미는 콘텐츠에 있어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난 동의하지 않는) 맥락에서는 이 점이 긍정적일 수 있겠지만 여튼 앞으로 나열될 이 '충격'의 포인트에 이 드라마의 특징을 담아 보았으니 내가 받은 '충격'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면 시청을, 부정적으로 다가온다면 과감한 패스를 추천하는 바이다.
"첫 번째 충격, 흑인 공작(Black Duke)이 주는 비주얼 신세계"
넷플릭스가 <브리저튼> 공개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시기, 나는 예고편을 보자마자 '공개 알림'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영국 시대극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예고편에서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바로 남자 주인공으로 보이는 한 잘생기고 섹시한 흑인이었다.
그의 비주얼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일단 잘 생겼다. 짙은 레드 벨벳 양복을 매끈하게 차려입은 사내의 등장은 그 짧은 틈새의 예고편에서도 빛이 났다. 물론 외모에 대한 평은 늘 갠취이기 때문에 짧게만 하겠다. 여튼 개인적으로 흑인 배우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임에도 이 남자 주인공인 '사이먼 바셋', 일명 헤이스팅스 공작(배우 레게 장 페이지, Regé-Jean Page)의 비주얼은 로맨스물의 남자 주인공으로는 제격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탄과 거의 동시에 찾아온 충격은 '이게 무슨 설정인가?'하는 혼란이었다. 물론 그는 잘 생겼지만 '영국 시대극에 웬 흑인? 그것도 귀족 공작?' 이 바로 이 포인트가 <브리저튼>을 보고 싶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이유였다. 남자 주인공이 흑인 공작이라는 사실 단 하나만으로도 이 시대극이 기존의 것들과 뭔가 결을 달리 할 거라는 선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게 가장 중요한 영상 콘텐츠에서 <브리저튼>은 남주의 피부색을 바꾸는 것으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결국 시청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 흔히 말하듯 시작은 반이니까.
(물론 매력적인 흑인 남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원작에 없던 설정을 덧붙여 여러 캐릭터를 블랙 워싱(balck washing) 한 것이 스토리에까지 어떤 의미를 불어넣은 건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남주의 외모와는 달리 연기력에는..조금 의문이 들었고. 하하.)
"두 번째 충격,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미술과 의상"
만약 <브리저튼>을 볼지 말지 고민중인 분들 중, 시대극에서만 즐길 수 있는 화려한 드레스들과 예쁘고 고급진 배경, 소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이 드라마를 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만큼 이 드라마의 미술과 의상은 미쳤다!!
시즌 1의 주인공은 이 집안의 넷째이자 장녀인 다프네(Daphne)로, 그녀의 '시집 잘 가기' 프로젝트가 주 내용을 차지한다. 여주의 결혼 이야기는 영국 시대극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초 흔한 소재지만, 그만큼 잘 먹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왜냐? 결혼을 하려면 남자를 만나야 하고, 이 시대 때 남자를 만나려면 무조건 사교계 파티에 가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파티에서 청춘 남녀가 서로 제일 예쁘게 차려 입고 춤을 추면서 시선과 감정을 교환하는 가장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래서 사실 이 사교철 시즌 이야기 만으로도 드라마는 충분히 자극적일 수 있지만, <브리저튼>은 한 술 더 떠 버린다. 이 파티를 아주 시즌 내내 열어제낄 뿐 아니라,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가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으로 점철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 한 시즌만을 위해 제작한 의상이 총 7,500벌이 넘고, 여자 주인공의 의상만 104벌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심지어 위의 이미지에서처럼 조연인 옆집 못난이 세 자매의 촌스런 드레스조차 디테일과 퀄리티가 모두 남다르다. 파티에는 샴페인 잔으로 만들어진 성이 쌓여있고, 그냥 옆을 지나가는 엑스트라조차 휘향 찬란한 옷과 장신구를 매달고 있다.
이 뿐인가? 등장 인물들의 태반이 귀족이기 때문에 저택을 장식한 수없이 많은 꽃, 응접실의 고급 가구와 그림, 식기, 카펫 등은 어느 것 하나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여왕(역시 흑인이다)이 나타날 때면 그 모든 화려함은 분량과 관계없이 배가 된다.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미술에 쏟아부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재미가 있는 <브리저튼>. 값비싼 비주얼 쇼크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면 시청을 추천한다.
"세 번째 충격, 시청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OST"
<브리저튼> 첫 화를 시청하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1813년 배경의 시대극을 보고 있는데, 첫 번째로 열린 댄스 파티에서 뭔가 귀에 익숙한 사운드를 들은 것이다. 연주는 분명 클래식 현악기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멜로디와 리듬이 현대적이어서 '음? 나 이 노래 아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검색 후 내 귀가 옳았다는 것이 판명됐다.
드라마 전반에 대부분은 클래식한 느낌의 오리지널 배경 음악이 흐르지만, 중요한 순간이라든지 하이라이트의 모먼트가 되면 유명 팝송들을 현악으로 연주한 음악이 흘러나와 귀를 사로잡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라아나 그란데의 <Thank u, next>였고 그 외에도 마룬 파이브의 <Girls like you>라든지 빌리 아이리쉬의 <Bad guy>등 총 6곡을 아주 흥미롭게 편곡해서 담아냈다. '비타민 스트링 콰르텟'(Vitamin String Quartet)이라는 현악 4중주 그룹의 작품이라는데 원래도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로 유명한 그룹인 것 같다.
OST의 변곡은 개인적으로 아주 기분 좋은 충격이라 생각한다. 사실 시대극에 흑인 귀족과 왕비라는 설정으로 이미 판타지성이 매우 짙어졌는데, 만약 그 외의 다른 것들은 꽉 막힌 시대극 요소로만 채워 넣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극을 대표하는 클래식 현악기와 대중음악의 조합은 이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훌륭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음악의 퀄리티 자체도 매우 높아서 이미 유튜브에서도 OST 콘텐츠의 인기가 드라마 못지않음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고 말이다.
"네 번째 충격, 숀다 언니가 풀어가는 8남매의 이야기라고?"
시즌 1을 하루만에 정주행으로 끝낸 밤 11시, 당연히 <브리저튼>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검색 결과 놀라웠던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원작 소설은 8권이 완결이고, 한 권 당 '브리저튼'가 남매들이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휴, 뭔데 8남매나 있어? 산만해' 라고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시즌1은 다프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 외의 남매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뭔가 흐름이 깨진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른 형제들의 매력도 잘 느끼지 못했고 말이다.(특히 첫째 앤쏘니 극혐)
그런데 결국 이 8명의 이야기가 앞으로 한 명씩 소개될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물론 시즌2가 확정된 시점에서 다음 시즌을 무조건 보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머지 형제자매들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주 기대함으로 다음 시즌을 기다리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 시리즈의 제작자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라는 사실이었다. 이 숀다 언니가 누구냐? 미드를 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그레이 아나토미>의 작가 겸 제작자이자 그 외에도 자극적인 스토리의 시리즈물 제작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홀려서 시즌 15까지 욕하면서 봐 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기대 겸 걱정이 되긴 했다. 또한 '아~ 그래서 남주가 흑인이었구만...' 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물론 탄탄한 원작이 있고, 시즌1도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되지만, 인기 시리즈도 얄짤없이 끊어버리기로 유명한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과연 8개의 시즌을 모두 만들어 낼지는 알 수 없지만... 숀다 언니의 MSG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그리고 또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 조금은 걱정도 되고.
"다섯번째 충격, 작가가 개 멋있자나?"
마지막 충격은 작가로부터 받았다. 자연스레 원작 소설에 대해서도 슬쩍 검색을 해 보았는데, 필명마저도 할리퀸 로맨스물에 찰떡인 작가 줄리아 퀸(Julia Quinn-물론 본명은 '퀸'이 아니다)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놀라웠다. 1970년 생으로 현재 중년인 이 작가는 할리퀸 로맨스 작가로는 흔하지 않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은 인물이다. 물론 꾸준한 작업과 결과물로 지금의 유명세에 이르긴 했겠지만, 이 작가의 필모에서 놀라웠던 포인트는 바로 그녀 자체의 스토리였다.
하버드 대학교를 나와서 예일대 의과 대학원까지 진학했던 줄리아 퀸. 의과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공부를 하면서 남는 여가 시간에 뭘 할지를 고민하다가 바로 로맨스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은 뭘 해도 잘하는 건가도 싶지만 그냥 그렇다고 보기에는 확실히 취향의 승리였던 것 같다. 심지어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글 쓰기를 계속하다가 끝내 두 가지를 병행하지 못할 때가 왔을 때 결국 글쓰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등짝을 수차례 맞고 어쩌면 부모님으로부터 절연을 당할 수도 있는 스토리였겠지만, 다행히도 결말은 해피엔딩.
물론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좋은 대학과 탄탄한 진로를 포기하고 로맨스 소설을 택할 정도로 낭만과 감성이 살아있던 작가였기에 유명해지기까지 또 오랜 세월 글을 써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성공을 해서 멋진 것도 있지만 성공의 여부를 전혀 알지 못했을 때 과감한 선택을 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스토리를 빛나게 하는 것 같다. 로맨스 소설과의 로맨스에 성공한 소설 같은 이야기. 신선한 마지막 충격이었다.
한 시즌에 1년이 소요되는 미드의 특성상, 아마도 <브리저튼> 시즌 2는 2021년 연말쯤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원작의 순서대로 진행될지는 모르겠으나 순서대로라면 아마 두 번째 시리즈는 첫째 장남인 앤서니의 이야기일 터. 가장 비호감인 인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 시대극의 팬으로서, 그리고 <브리저튼> 시즌 1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부디 다음 시즌도 즐거운 충격들이 많길 바라며(물론 <다운튼 애비>급까지는 말고) 1년을 잘 버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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