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없어도 먹으니까 배는 차더라"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많은 기대를 모았던 레드 노티스(Red Notice). '레드 노티스'는 인터폴의 적색(최악) 수배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말 그대로 전세계적인 범죄자들을 뜻한다. 제목부터가 범죄와 관련된 케이퍼 무비(Caper movie)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인데다 그 범죄자들이 무려 드웨인 존슨과 라이언 레이놀즈와 갤 가돗이었기 때문에 볼 수 밖에 없었다.
나같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는지 레드 노티스는 21년 11월 30일 기준으로 기존의 '버드박스'를 제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시청시간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가 났었다. 하지만 그만큼 비싼 제작비(아마 세 주인공의 출연료가 대부분일 듯)와 대대적 흥행과는 별개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것이 많은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보고싶은 영화이고, 실제로도 볼만한 요소들이 아예 없진 않다. 마치 결혼식 뷔페같은 느낌이랄까? 그리 맛있지는 않지만 일단은 먹게 되고, 그래서 배는 차게 되는. 하여 작품성이라든지 스토리의 탄탄함 등을 기대하지 않고 연말연시 휴가를 TV앞에서 보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시간 떼우기 용으로 나쁘지 않을 거라는 평과 함께, 소문난 잔치의 먹을 거리 두 가지를 소개해 본다.
"먹을 거리 하나, 캐스팅의 맛"
드웨인 존슨,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 일단 캐스팅 부터가 오락영화에 최적화 된, 흥행을 염두에 둔 게 분명한 구성이다. 각 세 명이 단독 주인공이라고 해도 관심이 갈 텐데, 핫한 세 사람이 뭉쳤다고 하니 어떤 케미스트리가 나올지도 참 궁금했다. 메인 포스터부터도 다른 거 없이 딱 세 사람에게만 집중한 것처럼, 이 영화를 봐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 사람의 조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조합을 만들어 낸 감독과 제작진의 노고를 생각해 보면 완성도의 부족함을 은근슬쩍 감안하게 된다.
역시 각 인물들은 각자가 보여줘야 할 매력들을 충실히 소화해 낸다. 드웨인 존슨은 약간 늙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역시나 섹시하고 터프한 매력을 액션을 곁들여 마음껏 뽐낸다. 아마 가장 먼저 캐스팅 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로슨 마샬 터버 감독의 두 전작("스카이 스크래퍼", "센트럴 인텔리전스")의 주인공이 모두 그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초반에는 생각보다 놀림감(?)으로 전락한 얼빵한 매력도 발산하며 라이언 레이놀즈와의 묘한 브로맨스를 보여준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나온다. 데드풀의 연장선상같은 느낌의 깐족거림과 말재간으로 드웨인 존슨을 마구 놀려대면서 웃음을 만들어 낸다. 사실 새로울 건 없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재미를 책임지는 역할에는 매우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를 하면서 드웨인 존슨과 두 살 차이라는 점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ㅋ.
갤 가돗은 원래 DC의 정의로운 원더우먼으로 익숙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정 반대의 캐릭터를 맡았다는 면에서 가장 신선하다. 두 남자를 가지고 노는, 스마트하고 능력 많은 악당 of 악당으로 나오는데, 섹시한 빌런 역할이 생각보다 잘 맞는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의외로 악역에 잘 맞는구나 싶었다. 세 아이의 엄마라고 믿기지 않는 여전한 몸매와 유일한 홍일점으로 씬마다 보여주는 다양한 패션 역시 꽤 매력적이다.
드웨인 존슨과 갤 가돗이 비주얼을 채운다면 오디오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채워준다는 느낌인데, 사실 세 사람의 조합이 아주 찰떡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본 11명 이상이 나오는 오션스 시리즈도 캐릭터들의 합이 굉장히 조화로운거에 비해서 달랑 세 사람인데도 합이 딱 맞는다는 느낌이 없다는 건 아쉽다. 어쩌면 그만큼 세 사람의 개성이 강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눈이 즐겁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조합을 내 눈이 차마 무시하지 못해서 시청한 게 사실이니까.
"먹을 거리 둘, 돈의 맛"
레드 노티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제작비인 2억 달러를 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2천억 정도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대부분이 캐스팅 비용인 것 같지만 보고 나니 로케이션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 같다.
국제적인 범죄자들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보물을 찾으러 다니기 때문에 약간 인디아나 존스나 오션스 시리즈같은 화려한 로케이션 역시 탑재되어 있다. 물론 해외 로케이션은 이제 헐리웃 액션 영화들에서는 흔히 보는 장면이기 때문에 색다를 건 없지만, 시국 때문에 주인공들이 마스크도 없이 전 세계를 마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대리만족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위의 사진처럼 화려한 유물이나 다양한 액션 등의 볼거리는 역시 돈을 들이면 일정 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다시 한번 증명해준다. 물론 그래서 그만큼 조금만 더 많은 돈을 대본에 들였더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역시 남는다. 은근히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나긴 했지만, 너무 비주얼 몰빵이었던 이 모임은 아무래도 단발성에 남지 않을까 싶다.
"속편이 나올까? 글쎄..."
앞서도 말했듯이 엔딩은 속편을 굉장히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감독도 속편에 대한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워낙 스케일이 커서 힘들었기 때문에 만약에 찍게 된다면 2편과 3편을 같이 찍을거라고 애매하게 답변을 내 놓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엔딩은 '일단 밑밥이나 깔아보자'의 심산이었던 것 같고, 현실적으로는 제작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제작비가 워낙 많기도 했고, 1편을 보고 실망한 많은 사람들을 달래려면 스케일이 더 커지거나 인물이 더 추가되어야 할 듯 싶은데 대체적으로 평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언급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반전 포인트가 세 사람의 관계성에 대한 것이었기에 과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다. 나름 야심차게 만든 것 같은 1편의 반전마저 그리 놀랍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의 부족함은 이런 킬링타임용 오락영화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지만, 넷플릭스는 작품성 면에서 호평을 받은 시리즈물이라도 흥행이 안되면 짤없이 속편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속편 제작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나는 볼까? 음. 볼 것 같다. 연말연시 휴가 시즌에 머리를 비우고 눈을 즐겁게 하는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말에 115분 정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세 배우의 팬이라면 보는 것을 아주 가볍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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